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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처음 만든 코디 게임, 돌즈 클로젯

apoptosiss 2024. 8. 24. 03:41

 

 

몇 년 전 모 회사에 재직할 때, 앱개발을 공부 중인 초보 개발자와 둘이서 팀을 짜서 몇 가지 간단한 게임을 만드는 프로젝트에 투입된 적이 있다.

대표님의 지시에 따라 기획부터 개발까지 일주일 내로 완료할 수 있을 만한 가치없는 게임을 몇 가지 만들어 출시했다. 결과는 당연히 처참했다. 내부테스트도 안 하는 허섭한 클리커 게임 아류작으로 반응이 올 리가 없으니 ㅎㅎ

 

이 프로젝트에서 대표님이 바라보는 비전과 내가 이루고 싶은 골이 너무 달라 당시에는 심적으로 너무 힘들었고,

제작과 출시 경험이 조금 쌓이자 비교적 짧은 시간 안에 개발할 수 있으면서도 확실하게 성과를 낼 수 있는 게임을 하나 만들고 싶다고 떼를 썼다.

그렇게 만들어진 것이 돌즈 클로젯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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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 타이틀 이미지. 저작권은 (주) 북팔코믹스에 있음.

 

 

돌즈 클로젯은 지금까지 만든 숱한 클리커 게임과 다르게 내가 아주 자신있다고 자부하는 분야의 게임이었으나,

막상 개발을 제외한 모든 기획과 제작을 1부터 100까지 도맡아 진행하려니 병목이 아주 많았다.

그래픽 리소스는 모두 클립 스튜디오와 포토샵만으로 작업했고, 레이어를 겹겹이 쌓아올리는 옷입히기 방식을 최대의 효율로 구현하기 위해서 개발자와 머리를 맞대고 같은 이미지를 몇 번이고 재출력해서 테스트하기도 했다.

SD 캐릭터 작업에는 자신이 있었는데 막상 앱테스트와 오류 확인, 원하는 시스템의 작동 구조 등에 매진하다 보니 욕심을 낼 수도 없어 출시 당시에는 클로젯 돌의 옷장이 한없이 빈약했다.ㅎㅎ

 

출시 직후 결과가 좋지 못하면 이 게임에 리소스를 투자하는 것을 그만둬야 했지만 다행스럽게도 이 행운의 게임은 출시 일주일만에 별다른 프로모션 없이 1000 다운로드를 돌파했고, 계속 상승세를 타 최종적으로는 10만 다운로드 돌파/하루 평균 접속 유저는 1000명을 넘는 기염을 토했다.

게임을 즐기는 유저의 연령대도 상당히 다양했다. 내가 타겟으로 설정한 유저들이, 이 게임의 의도를 정확하게 간파하고 '그래, 이렇게 상을 차려 두었으니 즐겨 주마' 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당시에는 정말 날 듯이 기뻤다. 배워 본 적도 없는 기획이 처음으로 성공했을 때의 짜릿함이란... ㅎㅎㅎ

본 적도 없는 수많은 유저들이 새로 들어올 때마다 하이파이브를 하는 기분이었다.

무엇보다 나와 같은 코디네이트/콜렉터 게임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내가 만든 코디 게임을 즐기고, 열광한다는 게 너무도 가슴 설렜다.

기능도, 그래픽도 초급 수준에 불과했던 게임의 포텐셜을 끌어올려 유저들을 더 만족시킬 수 있는 방안을 끊임없이 고민했고, 돌즈 클로젯 프로젝트를 떠나게 되기 전까지는 그야말로 '클로젯 월드'의 세계를 만드는 데에 푹 빠져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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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저들의 생활을 책임졌던 메인 NPC 노노, 사빈, 시트러스.저작권은 (주) 북팔코믹스에 있음.

 

어쨌든 매출을 만들어야 숨통을 유지할 수 있다 보니 기본적으로 과금 유도 방식을 가지는 형태이긴 했으나,

유저들이 보다 게임에 몰두할 수 있는 요소를 만들고 싶었다.

그러나 그냥 옷을 구매하고 입혀 저장하는 것이 시스템의 알파이자 오메가인 게임의 한계는 명확했고 심지어 도중부터는 개발 리소스의 투입이 중단되었기 때문에, 캡슐토이 외 신규 컨텐츠의 업데이트가 불가능한 상황에서 유저 리텐션을 계속 유지할 돌파구를 게임성 외의 부분에서 찾아야 하는 어려운 과제가 주어졌다.

 

그래서, 유저들의 아바타 '클로젯 돌'이 존재하는 세계관을 탄탄하게 다지기로 했다.

일회성 마네킹인 '사빈' 에 대사를 추가해 각종 비밀스러운 설정을 넣기도 하고, 신규 캡슐토이 테마 사이에 연관성을 넣어 유저들이 추리할 수 있게 했다.

클로젯 돌이 수많은 코디네이트를 통해 '자기다움'을 발견하면 비로소 인간이 될 수 있다는 주요 설정으로 인해, 유저가 자신의 아바타에 다양한 의상을 입혀 가는 것 그 자체가 자신이 돌보는 클로젯 돌의 성장을 돕는 것이라는 동기도 부여했다.

 

이 방법은 다행히 성공적으로 작동했다.

0.99 업데이트까지는 단순한 옷 입히기 게임으로 여기는 반응이 많았으나, 세계관을 도입한 후  클로젯 돌에 애정을 가지는 유저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다른 경쟁사 게임에 비하면 턱없이 작은 클로젯 월드에서, 유저들은 서로 세계관을 통해 릴레이 소설을 쓰기도 하고, NPC와 친밀한 관계를 상상하기도 했다.

'헬즈랜드' 와의 관계성, 아르바이트 편의점과의 관계성(이건 사실 이전 클리커 게임 프로젝트의 잔존물이다)... 다양한 방식으로 각자 퍼즐 조각을 맞추면서 노는 사람들이 생겨나니, 게임이 비로소 숨쉬는 느낌을 받기 시작했다.

 

(실제로 코디를 통해 어떤 스토리가 해금되거나 성장할 수 있는 시스템을 너무도 도입하고 싶었으나,

현실의 한계가 너무 명확해 하지 못한 게 지금도 아쉽다.

돌즈 클로젯을 즐기는 사람들에게 보여 주고 싶었던 수많은 시스템, 수많은 이야기가 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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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 프리미엄 숍의 세트 코디 캐릭터 안즈와 미키, (우) 메리 해피 크리스마스 캡슐토이의 UR 세트 캐릭터. 저작권은 (주) 북팔코믹스에 있음.

 

캡슐토이 가챠는 돌즈 클로젯에서 홈페이지 이벤트를 제외하면 유일한 컨텐츠 업데이트였기에, 업데이트 시기마다 유저 게시판에 조그만 축제가 열리고는 했다.

운영과 동시에 다양한 니즈를 충족하는 새로운 디자인을 매주 7종씩 제작하는 것이 너무 버거워 유저의 지갑과 나의 손목, 두 가지를 모두 쉬게 할 수 있는 '쁘띠토이' 를 출시해 보기도 하고,

콜렉션 게임에는 빠질 수 없는, 과금전사들을 위한 '프리미엄 숍' 을 출시하기도 했다.

의상 자체만 유료로 판매하는 것이 아닌, 같은 금액을 결제했을 때 얻을 수 있는 리본과 동일한 양을 지급받고 의상은 보너스 개념으로 획득하는 구조는 과금 유저를 위한 감사의 표시였다.

프리미엄 숍 출시 초반에는 욕 먹을 것을 각오했으나, 의외로 저연령층을 포함해 대부분의 유저가 출시 의도를 정확히 파악해 주었다.

 

 

매 테마마다 정성을 다하지 않은 것이 없고, 척 봐도 구린 옷들도 그 나름의 수요를 생각하고(!) 제작했다.나중에 알고 보니 어떤 분께서 이상형 월드컵도 만들어 주셨더라. ㅎㅎhttps://www.piku.co.kr/w/rank/a2yv3t#google_vignette

 

이상형 월드컵 랭킹 - 당신의 돌즈 클로젯 최애 가챠 월드컵 Ideal type worldcup PIK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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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ww.piku.co.kr

내가 작업했던 캡슐토이가 대부분 랭킹 상위권에 올라와 있어서 감격했고, 댓글에 가장 좋아하는 가챠나 돌즈 클로젯에 관한 추억을 이야기하는 유저들이 많아 가슴이 뭉클해지기도 했다.

그런데... 개인적으로는 첫 테마라서 애정이 있는 '기계도시의 인형'이나 출시 당시 유저들로부터 큰 반응을 얻었던 '고딕 저택의 비밀'이 상위권에 랭크될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많이 뒤에 있구나...

 

 

운영을 놓게 되며 가장 마지막으로 작업한 테마는 아래 녀석들이다.

 

 

 

 

 

*

돌즈 클로젯이 내 손을 떠난 후, 유저들 사이에서 수많은 의혹이 오간 것으로 알고 있다.

모든 맥락은 언급이 조심스러워 모든 추측이 맞는지, 틀린지는 다루지 않으려고 한다.

다만 멋진 작별을 하기에는 시간이 몹시 촉박했기 때문에 아마 유저들로서는 갑작스럽게 모든 것이 뒤바뀐 기분을 느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다.

 

그런데, 위키에 적힌 재미있는 루머인 사빈의 대사로 운영진이 퇴사(!?)를 암시했다는 부분은 콕 집어 사실이 아니라고 이야기할 수 있다.ㅋㅋㅋ

돌즈 클로젯을 손에서 떠나보내고 나서도 해당 회사에는 한참 더 재직했다.

신규 캡슐토이를 이용한 재미있는 세계관 설정을 구상해 대마법사를 잠시 탑에 넣어 두는 대사를 추가했는데, 이 대사 하나로 새로운 운영진이 비난을 많이 받은 것 같아 미안한 마음이다.

 

 

비록, 게임이 감당하기 어려운 큰 변화를 불어넣었고 종래에는 서비스 종료까지 결정한 것이 제작자로서는 참 아쉬운 마음이 크지만...

새로운 운영진의 손에서 다시 태어난 '돌즈 클로젯'도, 어쩌면 돌즈 클로젯이 가야 할 운명대로 간 것일 뿐이라고 생각한다.

유저 분들의 과분한 사랑을 오래오래 받고 싶었지만, 그러기에는 지반이 탄탄하지 않았다. ㅎㅎ

한계가 명확한 게임이 가져갈 수 있을 만큼, 딱 적당한 만큼의 행운이 함께한 것 같아서 아쉽기도 하고 마음이 먹먹하기도 하다.

 

 

서비스는 종료되었지만 내가 제작한 모든 리소스와 '돌즈 클로젯' 게임 등의 저작권은 재직하던 회사에 있다.

앞으로도 해당 회사가 게임을 재개발, 재출시하지 않는 이상 돌즈 클로젯은 더이상 게임 형태로는 보기 어려울 듯하다.

 

그러니 이미 전성기가 지날 대로 지나 서비스가 종료된 게임을 누가 기억하겠냐마는...

블로그를 통해 못다한 이야기나 설정 정도는 풀어두어도 괜찮지 않을까 생각한다.

추억을 되새기고 싶은 사람이 언젠가 글을 보게 되면, 새로운 읽을거리에 잠깐 앉아서 즐기고 갈 수 있지 않을까?